명진스님 프로필·조계종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다 프리다이빙 사고로 입적하다


 봉은사 주지로 재임했던 명진스님은 맹호부대로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에도 나서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권력 감시와 언론 자유 문제를 공론화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는 조계종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했지만 징계 무효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해 2026년 2월 조계종과 상고 포기에 합의하며 극적으로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승적을 회복한지 6개월 만에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프리다이빙 연습을 하다 안타깝게 입적했습니다.


명진스님 프로필·조계종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다 프리다이빙 사고로 입적하다
명진스님 프로필·조계종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다 프리다이빙 사고로 입적하다 

월남전에도 참전한 명진스님

1950년 12월 9일 충청남도 당진군에서 태어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잦은 이사와 전학을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아픔을 겪었고, 1968년 여름 입시 공부를 위해 무주 관음사에 머물던 중 한 스님으로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1969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성철스님을 찾아가 어렵게 환담을 나누고 법명까지 받았으나, 불경 공부를 위해 일어를 먼저 공부하라는 말에 출가를 미루었습니다. 이후 1971년 육군에 입대해 맹호부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시비를 거는 고참 병장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하극상이 됐습니다.

"너 영창 갈래, 아니면 베트남 갈래?"

부대 중대장이 하극상 사고를 친 자신에게 찾아와 영창과 월남전을 선택하라고 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1년간 참전하고 제대했습니다. 1974년에는 해군에 입대한 동생이 통영 YTL 침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5년 전 미뤘던 출가를 1974년 법주사의 탄성스님을 은사로 삼아 정식으로 출가하면서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1975년에는 법주사에서 혜정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고 출가 이후 송광사, 해인사, 봉암사, 상원사, 망월사, 용화사 등 전국 주요 선방에서 40안거 이상을 수행했습니다.

불교의 민주화 운동

젊은 시절 명진 스님
젊은 시절 명진 스님 

민주화 운동 시대에는 1982년 봉암사 산문 폐쇄를 주도하며 불교와 종단 개혁에 앞장섰고 1985년 봉은사에서 열린 10·27 법난 규탄대회에도 참여했습니다.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를 주도했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에는 불교계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며 시국선언, 단식기도, 추도대행진, 명동성당 농성 등에 참여했습니다.

1987년 불교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구속된 불교 신자 석방 운동을 벌였고, 약 1년간 서울 개운사 주지를 지내며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도 나섰습니다. 1988년 대승불교승가회 회장을 맡아 승가 조직화를 이끌었습니다.

선우도량 창립을 주도했고,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이끌며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을 지냈고,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중앙종회 부의장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과 본부장을 맡아 평양을 10여 차례 방문하며 남북 불교 교류를 이끌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봉은사 선원장을 거쳐 2006년 11월 8일 봉은사 주지 임명장을 받고, 같은 해 12월 5일부터 천일기도를 시작해 하루 1000배를 수행했습니다. 2007년 12월 4일 당시 전국 제일 부자절로 소문난 봉은사 재정 공개를 단행했습니다.

2008년 12월 2일 봉은사 비전을 발표해 지하 주차장과 대강당 등 시설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2009년 5월 29일에는 천일기도 기간 중 유일하게 산문을 나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불교 대표로 영가 기도 축원을 올렸습니다.

명진스님
진보 개혁파 성향 명진스님 

너무도 달랐던 명진스님 자승스님

2010년 3월 11일 조계종 중앙종회가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키자 정치권의 외압에 의한 결정이라고 폭로하며 반발했지만 2010년 11월 봉은사 주지 임기가 만료되며 물러났습니다. 이 무렵부터 자승 스님은 한국 최대 불교 종단의 행정책임자였고 명진 스님은 권력화를 비판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2011년 조계종으로부터 제적 징계를 받자 종단의 적폐 청산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후 월악산 암자에 머물며 수행모임 단지불회 회주로 활동했습니다. 2012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치적 견해를 밝혔습니다.

2014년 새 정치세력 건설을 호소하는 선언에 이름을 올리고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2017년 4월 조계종 초심호계원에서 명진스님에 대한 제적 처분이 최종 확정됐습니다.

같은 해 5월 각계 원로들이 승적 박탈 철회를 요구하는 모임을 구성했고,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단으로 참여하는등 진보정당과 손을 잡고 일선 정치에 나섰습니다. 2020년 1월 정의당 관련 방송에 전화로 출연했고, 3월에는 정의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2021년에는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향한 비판적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유튜브 채널 명진TV를 개설해 활동했고, 2023년 5월 20일 시국 법회 야단법석에서 당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1월 경기도 안성 칠장사 요사채 화재로 화마 속에서 자승스님이 입적했습니다.

자승스님이 떠나고도 계속됐던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은 2026년 1월 항소심에서도 무효 판결을 받았고, 2026년 2월 3일 조계종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10년에 걸친 소송이 마무리됐습니다. 조계종은 입장문을 통해 오랜 기간 겪은 어려움에 유감을 표했고 이후 특별재심을 신청해 명예회복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사춘기로 살고 싶은 명진스님
사춘기로 살고 싶은 명진스님 

명진스님 입적

세수 일흔이 넘은 나이에 프리다이빙에 입문한 명진스님은 최근 몇 년간 매년 5월부터 12월까지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프리다이빙 훈련을 이어갔습니다. 2026년 8월 22일 오전 9시 38분경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프리다이빙 물에 떠 있는 채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10시 28분경 사망 판정을 받아 입적했습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이었습니다.

화마 속에서 입적한 자승스님이라면 명진스님은 프리다이일 하던 중 물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마지막 가는길마저 달랐으니 이 또한 많은 생각에 젖게 합니다. 한 사람은 개혁을 외치면 진보 정치 성향과 어울렸고 다른 한 사람은 종단을 이끌며 보수 정치 성향으로 마지막까지 달랐던 두 분 스님이 결국 피안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제주 앞바다 프리다이빙 중 명진스님 입적
제주 앞바다 프리다이빙 중 명진스님 입적 

명진스님 약력

  • 1950년 - 충청남도 당진군에서 출생
  • 1969년 -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인연을 맺음
  • 1974년 - 법주사에서 탄성스님을 은사로 출가, 사미계 수지
  • 1975년 - 법주사에서 혜정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 1982년 - 봉암사 산문 폐쇄 주도
  • 1985년 - 봉은사 10·27 법난 규탄대회 참여
  • 1986년 - 해인사 승려대회 주도
  • 1987년 - 불교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 서울 개운사 주지
  • 1988년 - 대승불교승가회 회장
  • 1994년 - 조계종 종단 개혁 주도, 개혁회의 상임위원, 제11대 중앙종회 의원
  • 1998년 -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 봉은사 선원장 취임,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
  • 2002년 - 중앙종회 부의장 임기 종료
  • 2005년 - 봉은사 선원장 임기 종료
  • 2006년 - 봉은사 주지 임명, 천일기도 시작
  • 2007년 - 봉은사 재정 공개
  • 2008년 - 봉은사 비전 발표
  • 2009년 -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불교 대표 축원
  • 2010년 -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반발, 봉은사 주지 임기 만료
  • 2011년 - 조계종 제적 징계
  • 2012년 - 방송 출연을 통한 정치적 견해 표명
  • 2014년 -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 참여
  • 2017년 - 조계종 제적 처분 확정,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
  • 2018년 - 방송 출연, 저서 힘 좀 빼고 삽시다 출간
  • 2020년 - 정의당 제21대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고문
  • 2021년 -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 비판 발언
  • 2022년 - 저서 스님은 아직도 사춘기 출간
  • 2023년 - 유튜브 채널 명진TV 활동, 시국 법회 야단법석 참여
  • 2026년 2월 - 조계종과 소송 종결, 승적 회복
  • 2026년 8월 - 제주 해상에서 프리다이빙 도중 입적

명진스님 도서 출간

  •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서이독경 (2011)
  • 스님은 사춘기 (2011)
  •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2018)
  • 힘 좀 빼고 삽시다 (2019)
  • 스님은 아직도 사춘기 (2022)

명진스님 Q&A

Q. 명진스님은 언제 출가했습니까.
A.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Q. 명진스님은 봉은사 주지를 언제 지냈습니까.
A. 2006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지냈습니다.

Q. 명진스님은 왜 조계종에서 제적됐습니까.
A. 2011년 종단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 봉은사 주지 재직 당시 사찰 재산 관련 계약 문제 등을 이유로 제적 징계를 받았고, 2017년 4월 초심호계원에서 제적 처분이 최종 확정됐습니다.

Q. 명진스님의 승적은 어떻게 됐습니까.
A. 징계 무효 확인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고, 2026년 2월 3일 조계종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Q. 명진스님은 어떻게 별세했습니까.
A. 2026년 8월 2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프리다이빙 도중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명진스님 프로필

  • 영어: Myungjin / 한자: 明盡 / 속명: 한기중
  • 생년월일: 1950년 12월 9일 (나이 76세)
  • 고향: 충청남도 당진 / 국적: 대한민국
  • 키: / 몸무게: / 혈액형: / MBTI: / 종교: 불교 / 학력:
  • 군대 이력: 육군 맹호부대 (베트남 전쟁 참전)
  • 가족:
  • 개인 SNS: 유튜브(명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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