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가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로 가족,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를 주로 그렸습니다.
장욱진 화백은 1947년 ‘신사실파’를 결성했으며, ‘사실을 새롭게 보자’는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결성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에 따라 자연 사물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내재한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장욱진 화백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특징을 보입니다.
또한 “나는 심플하다”라는 말처럼 평생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살며, 작품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한 장욱진 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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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의 화백 장욱진 화가 프로필 & 수상 그림 작품활동 (고택 & 양주 미술관) |
동심의 화백 장욱진 화가
1918년 1월 8일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송용리,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서 아버지 장기용과 어머니 이기재 사이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8세 무렵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으며,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현 데이쿄예술대학)에 진학하여 서양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경성 제2고보 재학 중에는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하다 퇴학당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성홍열로 인한 투병 기간을 거쳐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1937년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유학 2세대 화가군을 형성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선전과 재동경미술협회전에 출품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4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을 당하여 일하던 중 해방을 맞았고, 이후 박물관 직원과 미술교사로 일하며 미술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해방 이후 1947년 신사실파를 결성하며 ‘사실을 새롭게 보자’는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연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하는 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1958년에는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해외 전시 활동으로는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한국현대작가전, 동남아시아 문화교류전, 미네소타대학 미술학부 교환전 등에 출품하며 한국 현대미술을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말년인 198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화가 장욱진 고택
-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마북로 119-8
- 전화번호: 031-283-1911
생전 작업실 겸 주택은 조선 시대 가옥으로, 2008년 9월 11일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04호로 지정되었으며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주소 : 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1
전화번호 : 031-8082-4245
가격 및 요금 성인 5,0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1,000원, 국가유공자·노인·영유아·장애인 무료, 단체 어른 3,500원, 단체 청소년 및 군인 700원, 단체 어린이 700원
장욱진생가
장욱진 화가 작품활동
장욱진 화가 그림 세계는 집, 가족, 아이, 나무, 새, 달, 까치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특징으로 합니다. 평범한 소재들을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대담하고 간결한 구도와 자신만의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해내며 ‘동심의 화가’로 불렸습니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평생 자연 속에서 단순한 삶을 살며 그림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화실이 위치한 곳이 개발되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새로운 자연 속에 화실을 차리는 행보를 차리며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생전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A4 용지보다 작은 손바닥 크기 수준으로, 가장 큰 그림도 A3 용지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소품 위주의 작업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작은 형식은 장욱진 화백의 예술 세계가 외부의 거대한 담론보다 내면의 정밀한 시선에 집중되어 있다고 평가됩니다.
※ 장욱진 화백 그림 밤과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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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욱진 화백 그림 밤과 노인 |
1990년 작고하기 직해 남긴 마지막 작품 ‘밤과 노인’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한 노인이 달과 집, 아이, 나무, 까치, 산 등을 남겨두고 하늘로 떠나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노인은 장욱진 자신의 자화상으로 해석되며, 달, 집, 아이, 나무, 까치 등은 그가 생전 즐겨 그리던 소재들입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평생 사랑해온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나가는 화가의 모습을 담은 유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 12월 27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자택에서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욱진 화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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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욱진 화가 그림 가족 |
- 가족
- 소가 있는 마을
- 나무
- 가로수
- 자화상
- 밤과 노인
장욱진 화가 수상 및 주요이력
- 1937년 -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 최우수상
- 1986년 - 제12회 중앙문화대상 예술대상
※ 장욱진 주요 이력
- 1939년 -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 진학
- 1944년 - 일제 강제 징용
- 1947년 - 신사실파 결성
- 1958년 - 국전 심사위원 역임
- 1986년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거주 시작
장욱진 화백 가족
부인 이순경 여사는 1920년에 태어나 2022년 8월 18일 별세하였으며, 장욱진과의 결혼 이후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습니다. 장인은 이병도이며 장욱진의 처남으로는 이기령, 이춘녕, 이태령, 이동녕 등이 있으며, 이장무와 이건무는 처질에 해당합니다. 이어령과는 8촌 처남 관계이며 장욱진은 나혜석으로부터 미술을 배웠으며, 동화작가 마해송과 이웃 사촌 지간이었습니다.
※ BTS 방탄소년단 RM이 반한 화가 장욱진
장욱진 화가 프로필
- 영어 Jang Uk-jin / 한자 張旭鎭 / 본명 장욱진
- 생년월일 1918년 1월 8일 (향년 72세)
- 고향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송용리 (現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 / 국적 대한민국 / 본관 결성 장씨
- 키 - / 몸무게 - / MBTI - / 종교 불교
- 학력 양정고등보통학교,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
- 가족 배우자 이순경, 자녀 1남 4녀, 부모님 아버지 장기용, 어머니 이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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