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일본을 침몰시켰던 도쿄대첩의 주인공 이민성호가 '또 하나의' 굴욕 역사를 썼습니다.
두 살 어린 우즈베키스탄, 일본에 패배하더니 이번엔 역대 맞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던 베트남을 상대로 10명이 뛰었음에도 패했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에 참가했던 팀들 가운데 역대 최악의 팀이라는 평가도 결코 과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현역 시절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도쿄대첩의 주인공으로 2002년 월드컵 4강 멤버로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입니다.
하지만 이민성 감독은 2025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서 21세 이하의 우즈베키스탄, 일본에 대패하더니 베트남 전에서도 10명 상대로 지는 대참사를 기록했습니다.
다행히 승부차기까지 간 만큼 공식 기록은 무승부로 남지만, 역대 U-23 대표팀 간 맞대결에서 한국이 베트남에 무릎을 꿇은 건 무려 10경기 만에 이번이 처음이라는 대기록을 썼습니다.
이민성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현영민 위원장 체제의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감독 선임 이유로 "게임 모델에 대한 본인의 확실한 철학이 있고, 구체적인 팀 운영 계획을 통해 감독직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자신감과 의지만으로는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민성 감독은 “아직 저희는 완성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할 팀”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민성 감독의 계약 기간이 아시안게임, 나아가 2년 뒤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까지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린 상황입니다.
도쿄대첩의 영웅이 아시안컵 참사가 된 안타까운 감독 이민성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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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대첩이 아시안컵 참사가 된 이민성 감독 프로필 & 축구 전술 수상 이력 |
도쿄대첩 이민성 감독
1973년 6월 23일 경기도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시흥국민학교, 문일중학교, 문일고등학교를 거쳐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닦았고, 아주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산 대우 로얄즈에 3차 지명되어 프로 데뷔 첫 해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1997년에는 부산의 K리그, 아디다스컵, 라피도컵 트레블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때 활약으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도쿄대첩의 결승골을 터트린 원조 골 넣는 수비수입니다.
1999년 군 복무를 위해 상무 축구단에 입대했으며, 특이하게도 상무에서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 기용되기도 했습니다. 2001년 전역 후 부산 아이콘스로 복귀했으나, 허리 부상과 연봉 협상 난항으로 잠시 슬럼프에 빠졌고 2003년 자유계약(FA) 자격으로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해 홍명보의 빈자리를 메우는 기대를 받았으며, 등번호 20번을 부여받았습니다.
포항에서의 2시즌 동안 6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며 팀의 2004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005년 다시 FA 자격으로 FC 서울로 이적했습니다. 서울에서 즉시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6년 리그컵 우승에 공헌했습니다. 2007년 4월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중상을 입었고, 2008년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으로 구단에서 방출되고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헤딩과 킥력도 갖고 있고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공격수를 맡은 골넣는 수비수입니다. 신체 조건(182cm, 73kg)보다 빠른 판단력과 탁월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하는 지능적인 수비수로 평가받았습니다.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모두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였습니다.
이민성 감독 커리어
은퇴 후 2010년 용인시청 축구단의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해 이후 광저우 헝다 코치(2012), 강원 FC 코치(2012), 전남 드래곤즈 코치(2013-2014), 울산 현대 수석 코치(2015-2016), 창춘 야타이 수석 코치(2016-2017), 대한민국 U-23 대표팀 수석 코치(2018-2020) 등을 거쳤습니다.
2021년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으로 정식 부임하여 2022년 팀을 K리그2 준우승 및 승강 플레이오프 승리로 이끌어 8년 만에 K리그1 승격을 이루며 대전 팬들에게 민버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2024년 시즌 중 대전 감독직에서 사퇴했으며, 2025년부터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민성 수상 이력 및 이적사가
- 1987년: 서울시장배 대회 득점왕
- 1997년: K리그 우승 (부산 대우 로얄즈), 아디다스컵 우승, 프로스펙스컵 우승
- 1998년: 필립모리스컵 우승 (부산 대우 로얄즈)
-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체육훈장 맹호장
- 2004년: K리그 올스타 선정, K리그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 2006년: 삼성하우젠컵(리그컵) 우승 (FC 서울)
- 1996–2002: 부산 대우 로얄즈 / 부산 아이콘스
- 1999–2001: → 상무 축구단 (군복무, 임대)
- 2003–2004: 포항 스틸러스
- 2005–2008: FC 서울
- 2010: 용인시청 축구단 (플레잉 코치)
- 2021년: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선임.
- 2022년: 대전 하나 시티즌을 K리그1으로 승격.
- 2024년: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사퇴.
- 2025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이민성 감독 전술 & 포메이션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 시절, 그는 주로 3-4-2-1 또는 4-2-3-1 포메이션을 활용했습니다. 수비에서는 압박과 함께 체계적인 라인 유지 및 공간 차단을 강조했으며, 특히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 가담과 빠른 수비 전환을 중요한 전술 요소로 역습 위주의 패턴으로 대전을 승격시켰습니다.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초기 경기들에서는 4-3-3 또는 4-2-3-1 시스템을 기반으로 높은 위치에서의 압박과 빠른 공격 전개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AFC U-23 아시안컵 3-4위전 베트남전(2-2, 승부차기 패)과 같은 경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기 운영 능력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축구감독으로서 전술 문제점은 간단한데 미드필더가 실종된 경기 운영으로 시종일관 의미없는 압박 플레이를 반복하다가 아시안컵 참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일부 선수 차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지만 일본, 우즈베키스탄은 21세 이하 팀이었고 베트남은 한 수 아래의 팀입니다. 수비는 불안하고 공격은 페널티 에이리어로 공이 들어가지 않는 축구로 앞으로 귀추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을 침물시킨 이민성, 감독으로는 대한민국을 침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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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성 감독 아시안컵 4강 대한민국 일본 전 하이라이트 |
이민성 감독 프로필
- 영어: Lee Min-sung / 한자: 李敏成
- 생년월일: 1973년 6월 23일 (나이 53세)
- 고향: 경기도 광명시 | 국적: 대한민국
- 키: 182cm | 몸무게: 73kg | 혈액형: - | MBTI: - | 종교: -
- 학력: 서울시흥국민학교 (졸업), 문일중학교 (졸업), 문일고등학교 (졸업), 아주대학교 (학사)
- 군대 이력: 상무 축구단 (1999-2001)
- 가족: 아내 (와이프), 자녀 등
- 연봉: 비공개
- 데뷔년도: 1996년 (프로 선수)
- 개인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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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컵 이민성 감독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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