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정책보좌역에서 시작해 2004년 열린우리당으로 부산 사하구에서 당선된 원조 민주당 친노 정치인 조경태 국회의원입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 당시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향해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가 있습니까? 그런 소고기 있으면 나한테 좀 주세요."라며 몰아붙여 조포스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민주당의 주류로 떠오른 문재인과 대립하면서 반문 노선으로 찍히면서 탈당과 함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으로 이적했습니다.
국힘에서도 국회부의장 선거에서 박덕흠 후보의 낙선을 종용했다는 이유로 2026년 8월 당원권 정지를 당한 이후 독자 노선 행보를 고집하며 이재명 시정연설 때 홀로 의석을 지키더니 악수를 거부해 또 한 번 화제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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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태 국회의원 프로필 · 이재명 악수가 징계 탈당 원조 친노로 민주당 입당 시그널 |
조경태 국회의원 프로필
- 영어: Cho Kyoung-Tae / 한자: 趙慶泰 / 본명: 조경태
- 생년월일: 1968년 1월 10일 (나이 58세)
- 고향: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 국적: 대한민국
- 거주지(집):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 서울특별시 강서구 염창동
- 키: / 몸무게: / 종교: 개신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 석사·박사
- 군대 이력: 육군 군수사령부 상병 복무만료(1990년 6월 11일부터 1991년 11월 19일까지)
- 가족: 부인(아내) 신미숙, 자녀 1녀
- 소속정당: 국민의힘(당원권 정지) / 지역구: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 의원 선수: 6선(제17, 18, 19, 20, 21, 22대) / 소속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 개인 SNS: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 참고: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노점상 단속에서 시작된 정치인 조경태 국회의원
1968년 경상남도 고성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이주하여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자갈치 시장에서 지게로 짐을 나르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렸고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학비 때문에 부산대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돈을 빨리 벌어서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서 부산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진학했고 학부 재학 중 공부에 미련이 생겨 아르바이트와 시간강사를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이던 1990년 육군에 입대하여 군수사령부에서 복무했고, 1991년 전역 후 복학하여 1994년 석사 학위를, 1999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88년 선배 따라가 노무현 사무소에서 투표함 지킴이로 밤을 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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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조경태 총선 누드포스터 |
잠시 운동권에도 몸을 담기도 했던 조경태 의원은 대학교 3학년이던 1988년 총선 때 선배 따라서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을 찾으면서 한 달 동안 자원봉사로 연을 맺었습니다. 개표 날까지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밤을 세웠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감사 인사를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지만 군대를 제대한 이후 시간강사로 지내던 시절 구포시장에서 노점상 단속반에게 대야를 뺏기고 "내 다라이 내놔라"며 통곡하는 것을 보고 통합민주당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부산 사하구 갑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누드 선거포스터를 선보이며 주목받았습니다.
노무현의 정책보좌관에서 2004년 어부지리로 당선되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당적으로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면서 새천년민주당으로 입당했지만 또 한 번 낙선했습니다. 이후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의 정책보좌관으로 원조 친노로 활동했습니다.
2004년 탄핵 역풍과 함께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출마해 현역이던 박종웅 의원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3파전이 벌어지면서 극적으로 여의도에 입성했습니다. 정치 활동 초반,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원내부대표를 지냈으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재선 이후에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 사업을 추진했고 국회 청문회에서 한미 소고기 협정 수정안에 강하게 반발하며 주목받았습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3선에 오르면서 민주당 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으로 당내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친노에서 친문 저격수로
노무현 서거 이후 민주당이 친문재인계가 주류로 떠오르면서 갈등이 시작됐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5가지 이유"를 들며 저격수로 나섰습니다. 급기야 2015년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느냐"며 원색적인 독설을 남기면서 비문을 넘어서 반문 노선을 걸으면서 결국 탈당했습니다.
당 지도부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결국 2016년 1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했습니다. 이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4선에 성공했으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불과 5년 전 민주당계 지도부였지만 2017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이 변경된 이후에는 수석최고위원을 지냈고, 2020년 미래통합당 후보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5선에 성공했습니다. 이 시기에도 수석최고위원을 맡아 당내 중책을 수행했습니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새길 순 있어도 하늘은 가릴 수 없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후보로 사하구 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6선 고지에 오르며 당내 최다선 의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당내 대표적인 비주류로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반윤 노선을 걸으며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과정에서는 찬성표를 행사했다고 밝혔습니다.
"반성은 커녕 뻔뻔해", "동네 건달 양아치만도 못해" 등 탄핵과 파면 재판 과정에서 비난 수위를 올리며 주목받았습니다. 급기야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선 것? 소가 웃을 일"이라며 계엄 이후 등장한 장동현 대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22대 후반기 국회 시작과 함께 당내 최다선으로 국회 부의장에 출마할 당시 박덕흠 국회의원의 낙선을 종용한 일로 2026년 8월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2년 6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징계로 인해서 사실상 2028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면서 김상욱 울산시장처럼 당적을 민주당으로 옮길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힘 퇴장에도 의석 지킨 조경태 이재명 악수
국힘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조경태 의원이 시정연설 중 자당 의원들이 퇴장하는 가운데 홀로 남아서 의석을 지키며 이재명과 악수까지 해 향후 총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사하구 을에 2023년 인재영입으로 이재성 NC소프트 전무이사를 전략공천할 만큼 특별한 인재가 없는 상태입니다.
꼬마민주당에서 시작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을 거쳐서 다시 국힘으로 왔던 조경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과 다시 손 잡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평생을 정치인으로 산 만큼 다음 23대 총선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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